한겨레 이정희 기사 문제 많았다

시사 2012. 4. 19. 16:43




















뭐, 한겨레가 어제 오늘 이렇게 해 온것도 아니고, 


조선일보나 한겨레나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이른지 오래지. 


조선일보와 대립각을 세우려면, 그에 걸맞는 팩트와 엄정함으로 중무장해도 모자랄판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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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정희 기사 문제 많았다


[슬로우뉴스] 돌아보는 4·11 총선 보도 ① 경선 조작 물타기, 노골적인 편향성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단일화 경선 여론조사가 한창 진행되던 3월 17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캠프 측에서 이상한 문자가 대량 발송되었다. 문제의 문자 내용은 이렇다.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짐. 다른 나이대로 답변해야 함.” 여론조사 조작을 유도한 이 문자로 인해 이정희 대표는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섰다.

이에 대해 이정희 대표는 “이것이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고 여기신다면 재경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사태가 진정될 수 없었다. “컨닝하고 걸리면 재시험 보면 되는 거냐”는 비난이 뒤따랐고, 이정희를 두둔하는 목소리는 힘을 잃어갔다.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겨레 역시 이정희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로는.

"이 난국을 풀 가장 중요한 열쇠는 통합진보당의 이 대표가 쥐고 있다. 사건의 무게에 비해 너무 큰 책임을 요구받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당과 주변의 의견도 고려해야 하니 심사가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도덕성을 무기로 삼는 진보정당의 대표 주변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결자해지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한겨레 사설, ‘ 좌초 위기 야권연대, 이정희 결단으로 풀어야 ‘, 2012년 3월 22일

이 사설은 결국에는 이정희의 사퇴를 촉구하고는 있지만, ‘사건의 무게가 가볍고’, ‘억울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물론 사안의 경중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고, 이 사건이 사퇴를 요구하기에는 가혹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당대 당 경선에서의 부정 경선 의혹이 가볍다고 여긴다 한들, 어찌 한겨레에게 내 가치를 강요할 수 있으랴. 그런데 다른 문제가 더 있다. 이 사설과 동반되어 쏟아진 한겨레 기사의 편향성이다.

  
한겨레 3월22일 5면.

한겨레, ‘ 통합진보 일각, ‘이정희 사퇴론’ 현실화 가능성 크지 않다 ‘, 2012년 3월 22일

위의 기사는 이정희 측에서 보냈다는 문자와 김희철 측에서 보냈다는 문자를 나란히 배치하고, “서울 관악을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경선이 진행된 지난 17~18일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쪽과 김희철 민주통합당 후보 쪽이 각각 지지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라는 설명을 단다. 그런데 이거, 좀 이상하다.

  
한겨레 기사에 인용된 양측 문자. 이정희 측과 김희철 측의 문자 내용이 거의 비슷하게 보이도록 편집되어 있다.

일단, 우측 김희철 후보 측이 보냈다는 문자부터 살펴보자. 이는 서울시 교통시의원 이행자 씨가 교회 인맥에 보낸 문자로, 문자 수신인 부분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다. 그런데 이행자 씨는 이미 기사가 올라온 날 오후 3시 30분 경 자신이 보낸 문자의 원본을 스스로 제시하고 이 문자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 했다.

  
이행자 씨가 공개한 문자 원본.

모자이크 된 부분에 써 있는 문구는 “은혜 마을 집사님”. 이행자 씨의 해명에 따르면 은혜 마을이란 교회의 2~30대 젊은 성도들의 모임이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2~30대 성도들에게 2~30대 여론조사가 진행 중이니 참여해달라고 호소한 것이므로, 문제가 될 여지가 거의 없다. 오히려 이행자 씨는 개인정보도 아닌 부분에 굳이 모자이크를 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음해와 물타기를 위해 일부러 모자이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데 10시 40분에 올라온 기사가 그로부터 7시간 전에 이미 올라온 해명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정희 측 문자도 캡처본도 이상하다. 이정희 측의 문자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다른 나이대로 답변하라”는, 즉 여론조사 조작을 노골적으로 의뢰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사는 문제의 부분은 빼고, “전화오면 50대로…”라는, 그 의미가 불분명해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만을 삽입하였다.

  
이정희 캠프가 보낸 문제의 문자.

이로 인해, 한겨레 기사만 보면 이정희 측과 김희철 측, 양측의 문자 내용이 거의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어떤 특별한 조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수 시간 전에 나온 원본 대신 가공본을 쓰고,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을 잘라내고 애매한 부분을 자료로 썼을 뿐이다.

3월 22일, 한겨레 인터넷 사이트가 메인 화면에 가장 크게 띄워놓은 기사도 도저히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기사다. 이정희 대표의 문자 논란이 야권연대 지지자들을 뒤흔들고 있을 무렵, 한겨레는 뜬금없이 메인 기사를 통해 한명숙 때리기를 시전한다. 함박웃음을 띄운 박근혜의 사진과 곁들여진 이 기사의 제목은 “ 필요할 때마다 야권이 적시타… 한명숙 고마워 “.

  
이정희의 여론 조작 파문이 거세게 불어닥칠 때, 한겨레는 뜬금없이 메인페이지를 동원해 '한명숙 때리기'를 시작한다.

한명숙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적잖이 불었음은 사실이고, 결국 총선 결과가 야권연대의 패배로 연결되면서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다. 한명숙 대표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타이밍이 묘하다. 당시 야권연대는 실제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는다면 마땅히 문자 조작 스캔들을 터트린 이정희 측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대체 왜 뜬금없이 이 시점에서 한명숙이 비난받았을까.

그리고 한겨레의 일련의 보도 태도는, 23일 이정희 대표가 결국 사퇴하면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정희 대표는 결국 후보에서 사퇴하나, 같은 지역의 야권 단일후보로 같은 계파의 이상규 후보가 나선 것은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내경선이었다면 문제가 될 만한 후보를 사퇴시키고 다른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 테지만, 이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양 당간의 대결이기도 했다. 통합진보당에서 문제를 일으킨 뒤 도로 통합진보당 후보가 나선다는 것은 “후보만 갈면 문제가 해결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 사설은 이정희를 예찬할 뿐이다.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로 인해 사퇴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이정희는 현명하고 깨끗한 정치인이 되었다.

"역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현명했다. 이 대표가 4·11 총선의 서울 관악을 야권 단일후보에서 사퇴했다. 이 대표를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안타까운 소식일 것이다. 참모가 저지른 여론조사 조작 시도 파문이 과연 후보직 사퇴를 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깨끗이 결단했고 머리 숙여 사과했다." 한겨레 사설, ‘ 이정희의 눈물이 살린 야권연대 ‘, 2012년 3월 23일

한겨레가 다른 언론들이 전해주지 않는 기사를 많이 만들어왔고, 그 누구보다 소수자의 아픔에 공감해왔음을, 그동안 보아왔고 그리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노골적인 편향성을 목도하고서도, 그 좋아 보였던 기사들이 이번에 보여준 편향성과 무관할 거라고 어찌 믿을 수 있을까.

(슬로우뉴스 원문은 http://slownews.kr/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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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은 아예 이름을 주사파신문, 아니, 장군님신문으로 바꾸든지....


경향신문을 볼지언정 한겨레는 꼴도 보기 싫다. 저건 조선일보보다 더 흉악하고 해로운 사이비 찌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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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민노당 자주파(주사파)의 패악질 총정리!!

시사 2012. 4. 18. 19:58








민주노동당 종북주의자 패악질 총정리 (2007. 12. 31 정리)


1. 울산북구 사건 (울산연합 -> 노동계 제압)

-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후보가 당선이 유력해지자 당내 세력우위를 이용해 기습적으로 최용규후보를 내세워 출마시켰으나 500여표 차이로 패배하여 당해산의 수모를 겪음. 그러나 당시 노동계후보였던 이상범이 올해 손학규지지를 선언하고 탈당하는 바람에 주사파나 좌파나 서로 언급을 꺼리고 있음.


2. 서울 노원도봉지부 사건 (서울연합 이상현 <-> 평등연대 정윤광 대립)

- 2001년 이상현과 정윤광이 지부를 장악하기 위해, 자기 정파사람들을 대거 이동해 오고, 천원, 삼천원짜리 당원을 끌여들이고, 선거인명부 조작의혹까지 주장하면서 개싸움을 벌임. 거센 당내 비판에 휴전하고 노원갑, 노원을, 도봉을로 분화됨. 덕분에(?) 당비규정 정비 및 지구당이동 문제점 노출됨.


3. 서울 용산지구당 사건 (인천연합 -> 지구당 창당세력 제거)

-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인천연합에서 대대적인 당적이동으로 용산지구당을 힘으로 장악한 사건. 용산지구당 창당세력을 제거하고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 중앙위원, 당대의원, 시도당대의원 등 11명 모두를 자파로 내세워 승자독식했다가 왕창 욕 얻어먹고 전원 사퇴한 사건.
-> 진상조사후 처벌하겠다던 당 지도부(권영길대표,노회찬사무총장)는 시간끌며 뭉개고 대충 넘어감.


4. 2002년 대선기간중 공선본의 해당행위 사건 (서울연합, 한총련, 민주노총 국민파 해당행위)

- 2002년 대선기간에 당 공동선거본부 중앙선거대책위원이었던 이천재 서울연합의장, 윤경희 한총련의장, 당 고문이었던 신창균씨가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막아야된다며 노무현 지지를 선언한 대표적인 해당행위 사건. 이후 이천재씨는 2005년 성남중원을 재보궐 선거에 슬그머니 나타나 권영길 의원과 정형주 후보사이에 손을 잡는 낯 두꺼움을 보여줌.
-> 분노한 평당원들의 징계요구 서명운동에도 당 지도부(권영길,노회찬)는 뭉개다가 그냥 넘김.

- 대선기간 중 당 안밖의 주사파들은 ‘6.15공동선언 이행.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일하는 사람들의 선거운동본부’(6.15 선본)를 만들어 독자적으로 활동했으며, 공식 지지후보는 밝히지는 않았지만, 반한나라당, 이회창 낙선을 주장하며 실질적으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함. 당내 많은 주사파도 암암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개표시각 낙담한 권영길 후보앞에서 노무현 당선소식을 들으며 환호성을 지른 사건은 주사파의 정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에피소드임.

- 대선 기간 중 배석범 민주노총위원장 직무대행, 김영대 사무총장, 박태주 씨 등 수 많은 노동계 인사가 민주노동당을 버리고 민주당(이후 열린우리당)으로 투항해 버린 사건도 있었음.


5. 서울 강남지구당 사건 (다함께 -> 지구당 창당세력 제거)

- 2002년 말부터 2003년에 걸쳐, 다함께가 강남갑지구당을 장악하기 위해 집단이적을 통해 다수파를 형성한 후, 조직과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당의 이념과 정책 중심이 아닌 다함께의 이념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면서 기존 소수파의 극심한 반발과 당내 비판을 받은 사건임. 특히 규약상 약간명의 부위원장 문구를 악용하여 위원장을 제외하고 부위원장에 자파세력을 10명을 출마시키는 엽기적인 행태를 보임.


6. 인천 남동갑지구당 사건 (인천연합 -> 좌파+경기동부연합 제거)

- 2002년 10월 26일 남동을(준) 창립총회을 앞두고, 90여명의 기존당원(중동지구당의 PD쪽의 당원 20여명, 경기동부연합 세력 12명 포함)을 힘으로 누르기위해 인천연합 쪽 부평갑.을지구당 소속 당원 73명이 당권신청 마감일인 9월 30일 주소 변경(지구당 이동) 신청함. 갑자기 당원이 90여명에서 1백 60명으로 불어나고 인천연합은 모든 당직을 '싹쓸이'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냄. 결국 73명 중 13명은 남동갑지구당에, 60명은 남동을지구당 창당사업을 기약하며 지구당을 재이동해 '전쟁'을 보류한 사건. (말지 참조)
-> 좌파가 경기동부와 연합하여 인천지역 여당인 인천연합에 맞선 재밌는 사건이었죠.


7.인천부평을 지구당 사건 (인천연합 -> 평등연대 제거)

- 2003년 인천연합이 집단입당시킨 신입당원의 당권생성일에 맞춰 대의원선거와 별도로 지구당 임원선출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려는 안을 표결로 밀어 붙이려다가 운영위원이 반발하고 퇴장한 사건. 그 당시 인천지역에서는 2002년 9월부터 12월 사이에 신규당원 4백여명이 집중적, 집단적으로 가입하였고 이 과정에서 접수된 당원가입원서상 주소가 동일주소에 다수가 거주하는 방식으로 작성되고, 말지 12월호에서는 인천지역의 당적이동, 창준위 건설과정에 대한 의혹기사가 게재되기도 함.


8. 서울 강동을지구당 추진위 사건 (경기동부연합 -> 지구당 창당세력 제거)

- 2003년 10월 강동을 창당을 원하는 몇몇 당원들이 기존 강동, 송파를 관리하고 있던 송파을 지구당과는 상의 없이 중앙당에 인준 요청을 했고 그것이 결국은 반려됐음에도 송파을 지구당의 총회와 운영위 결정 사항을 어기고 계속 강동을 지구당 창당을 시도한 사건. 경기동부연합의 소행으로 알려짐.


9. 광주 북구 당비대납 의혹사건 (광주전남연합?. 남총련?)
- 2003년 11월 6일 광주 시지부 자유게시판에 '학생당원'이라는 이름으로 '당비를 내지 않았는데 당권이 구제되었으며 이런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대화를 들었다.'는 고백의 글이 게시됨. 시지부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 당권이 구제된 36명중 당비 대납자 14명, 전달자 2명, 당비 거출납부 지시 1명, 수납자 1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함.
-> 당비 대납으로 확인되었으나 공개사과 자격정지 1년으로 징계 마무리.


10. 경기도당 복합기 사건 (경기동부연합)

- 2003년 중앙당에서 기증받은 복합기에 대한 기증취지와 배분논의에 대한 방침이 있었음에도 지역위로내려보내지 않고 임의대로 자파세력인 부문위원회로 지급한 사건.
-> 평당원들의 서명운동 등이 있었으나 좌파는 수수방관했고 당지도부는 뭉개기로 일관함.


11. 경기도 의정부갑 지구당 창당사건 (경기동부연합)

- 2003년 의정부 지구당에서 대의원대회에서 후보인정이 무산되자 창준위라는 말도 안되는 편법을 동원하여 후보로 출마하려 한 사건. 이 사건은 경기도지부 상근자가 허위공문을 작성하는 등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벌인 종파주의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여준 사건이다. 


12. 강태훈 고문 간첩사건 (주사파)
- 2003년 당 고문인 강태훈이 북한공작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활동하다가 적발된 사건으로 본인도 그 행위를 인정했음에도, 이종문외 80여명의 중앙위원이 징계반대 서명운동을 벌인 사건.


13. 광주 아이피 추적 사건 (?)
- 2004년 (자료 못 찾음)


14. 2004년 경기도당 도지부장 선거 팩스 사건 (경기동부연합 <-> 좌파+경기남부연합)

- 팩스의 기술상의 오류임에도 10분 늦었다는 이유로 후보등록을 거부한 사건. 이후 중앙선관위에 의해서 선거중지 판결이 남. 이런 선거파행 과정에도 경기동부연합 정형주씨가 경기도당 위원장에 당선되었으나 패권적인 행태에 분노한 좌파+나머지 연합세력에 의해 2년 후 김용한씨에게 낙선의 고배를 마심.


15. 이용대 정책위의장 후보자의 성소수자 폄하 발언 (경기동부연합)
- 2004년 "성소수자는 자본주의 파행의 산물이다"는 유명한 발언을 어록으로 남기셨음.


16. 여성당직자 폭행 사건 (경기동부연합)

- 2004년 민주노동당-민주노총-전농 대외협력실 수련회 술자리에서 건방지다고 여성 당직자를 맥주병을 깨며 폭행한 사건. 여성당직자를 폭행한 2인은 제명이 아니고 4년의 자격정지가 내려짐.
-> 평당원들의 제명요구 서명운동이 있었으나 좌파는 수수방관했고 당지도부는 4년 자격정지로 무마함.


17. 열린우리당 2중대 발언 (울산연합 김창현 사무총장)

- 2004년 민생정책보다는 열린우리당과의 정치적 개혁과정에서 타협하는 모습을 보임. 이 와중에서 김창현 사무총장의 "열린우리당 2중대면 어떠냐"라는 유명한 어록이 탄생함.


18. 국가보안법 투쟁 올인 (주사파)

- 2004년 당지지율의 하락과 민생의제에 대한 실종 등으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기반이 이완되는 현실에서도 국가보안법 투쟁에 올인하여 대중들로부터 당의 정체성이 이반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함.


19. 진보정치와 당기관지 이론과실천 장악 (경기동부연합 등 -> 좌파 제거)

- 2005년도 이론과 실천 편집장인 최영민 해고하는 등 진보정치의 파행사태를 불러옴. 그 자리에는 정성희 기관지위원장(경기남부연합), 신석진 편집위원장(경기동부연합), 김장민(필명 오한강. 자평련)이 차지하고 당기관지가 아닌 주사파 기관지를 만들고 있음.
-> 분노한 평당원들이 서명운동들을 펼쳤으나 전진은 수수방관했고 당 지도부는 미봉책으로 일관했음.


20. 북한의 핵보유와 6자회담 탈퇴에 대한 당의 침묵 (주사파)

- 2005년 당의 침묵으로 민주노동당이 친북정당이라는 오명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됨.


21. 최고위원회의의 부유세 폄하 발언 (민주노총 국민파)

- 2005년 부유세 폄하 발언이후 당에서 부유세 문제가 실종되고 윤종훈 정책연구원이 사퇴하게 됨. 


22. 학생당원의 일장기 소각과 독도 군대파견 발언 (학생위원회, 한총련, 국민파)

- 2005년 이 사건으로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이 당 밖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등을 돌림.


23. 당대표 선거부정과 조승수 후보에 대한 악의적인 선동 (문성현을 세운 주사파 -> 조승수 좌파)

- 2006년 당대표 선거에서 조승수 후보에 대한 악의적인 허위사실 등 흑색선전을 펼침. 당내 절차를 통해 바로잡으려 했으나 중앙위원회, 당대회에서 모두 부결됨. 이에 실망한 당원이 개인자격으로 검찰에 고발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아직까지 주사파는 오리발을 내밀고 있음.
-> 평당원들이 또다시 일어나 서명운동을 펼쳤으나 좌파는 수수방관했고 당지도부는 침묵했음.


24. 송주석 문건 사건 (울산연합)
- 2006년 지방선거후보 경선중 각 지역 주사파들에게 공직선거운동을 중단하고 김창현후보를 후보를 지원하라는 내부문건이 밖으로 알려짐. 이 문서를 읽으면 주사파의 적대적 정서에 소름이 끼침.


25. 임동규 당기위원장 사건 (광주전남연합)
- 열린우리당 외곽조직에 몸담고, 반 한나라당 전선에 복무해야 하는게 신념이라는 임동규씨를 최고위원도 모르게 추천하여 가까스로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되었다가 당내 반발과 그간 행적이 밝혀지면서 사퇴하게된 사건.


26. 일심회 사건 (최기영, 주사파 당 지도부의 감싸기, 다함께 엄호)

- 2006년 최기영 당 사무부총장이 당원 300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긴 사건. 이는 당의 대중적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정적 사건이 됨. 대법원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최기영에 대한 생활비 지급이 이루어지고 있고 출당조치가 없음. 특히, 다함께의 엄호가 눈물겹게 계속되고 있음.
-> 평당원들의 제명/출당 요구가 있었으나 주사파가 다수인 당 지도부는 오히려 최기영을 감싸고 1주년 기념식까지 열어줌. 특히, 다함께의 최기영 엄호로 런던연합, 국제민족주의자라는 별명을 얻음.


27. 지방선거에서 광주시당, 경남도당 회계부정 사건 (광주전남연합,경남연합)

- 2006년 지방선거에서 분명한 회계부정이 있었음에도 당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지도 취하지 않고 있음. 이는 국고보조금은 받아 먹으면서 정당법은 지키지 않으면서 이중장부와 부정회계 원인을 제공함.
-> 주사파는 물론 전진 등의 좌파도 이중장부,부정회계의 공범임.


28.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감'표명 (다수 주사파)

- 2006년 중앙위원회에서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감표명 성명서를 채택하려 했으나 다수파인 주사파의 반대로 무산되고, 오히려 미국책임이라는 수정안을 내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함. 소수파 좌파가 퇴장함으로서 미국책임론을 담은 수정안은 채택되지 않았으나 북한 핵실험에 대한 명확한 비판이나 반대 입장을 표하지 않으므로 당이 친북정당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됨. 그리고 당의 녹색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임. 


29. 한국진보연대의 가입 (다수 주사파)

- 2007년 통인운동단체의 집합체인 한국진보연대에 가입하여 반대하는 사회운동세력과의 연대 파행. 당을 전선체의 하위조직으로 보는 주사파의 일관된 신념을 보여준 사례임.


30. 광주시당의 시당위원장 선거에서 공보물 고의 지연 사건 (광주전남연합)

- 2007년 자파의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상대편 후보를 알릴 수 있는 여지를 차단시킨 종파적인 사건 


31. 상근자에 대한 만성적인 임금 체불과 상근자 노조에 대한 무시 (다수 주사파+다함께)
- 2007년 상근자에 대한 만성적인 임금체불과 상근자 노조에 대한 공격


32. 경남도당 당원에 대한 소주병 안면가격 사건 (경남연합)
- 2007년 경남도당 회계부정 문제로 말다툼을 하던중, 상근자가 당원의 얼굴을 소주병으로 가격하여 유혈이 낭자한 채로 수십바늘을 꿰 맨 사건. 이후 주사파가 장악한 경남도당 당기위원회에서 가해자에게는 6개월 정직, 피해자에겐 3개월 정직이라는 어이없는 판결을 내림. 이후 중앙당기위원회에 항고했는데 기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함.


33. 대선참패를 가져온 수많은 오류들 (다수 주사파)

- 2008년 비례를 위해 당의 혁신을 외면한 권영길 후보의 지지, 백만 민중대회, 코리아연방공화국, 한국노총에 대한 당 대표의 사과등 등 대선과정에서 당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오류들을 수없이 범함.


* 이외에도 타 지역 출마를 위해 위장전입, 당 예산의 편법과 무원칙적인 운영, 지역에서 노골적인 상대편 당원에 대한 배제와 편 가르기 등이 자행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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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위의 인간들이라면 차라리 박그네 새누리당이 훨씬 낫다. 성추행, 논문 복사 한 인간들을 당에서 추방하는 시늉이라도 하니 말이다.


주사파의 적출이 없는한 진보의 정권쟁취는 아득히 먼 판타지 소설일 뿐이다.


야권연대로 이런 패륜+패악의 무리들이 9석이나 차지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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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동부연합'이란게 없다고? 예라이 한겨레야. 아니 한걸레신문아!!

시사 2012. 4. 18. 17:17













이러니까 야권이 개박살 난거다. 

진보언론 <한걸레>라는데서 이따위의 기사나 매번 실어대니

자신들이 망하는지 어쩌는지, 잠망경 없는 잠수함이 되어서 침몰해 가는것이다.


전국연합이니, 경기동부연합이니 간판이야 예전에 떼어냈었지.


간판만 말이지.


마치 곤충들이 허물을 벗듯이, 전국연합이니 경기동부연합이니하는 허물만 벗었고, 그 내용물인 김일성교 사교집단이란 점은 그대로지. 


그래도 실체를 가진 분명한 세력임에 틀림 없는데, 이따위 기사나 써대니 말이다.


통합진보당의 국회의원 당선자 중에서 


저놈의 당권파 혹은 자주파(라고 쓰고 주사파라고 읽는다.)만 9명이다.

나머지 4명에 심상정, 노회찬 등등이다.


야권연대로 야당 전체를 숙주로 삼아서 주사파들의 금뱃지 획득만 남았던 선거...끊임 없이 자신들이 기생해먹을 숙주를 찾아 해메는 주사파들.


울산, 창원에서는 셀프 빅엿을 스스로에게 거대하게 먹여서 새누리당의 영남 석권에 1등 공헌을 한 울산연합 주사파들. 솔직이 새누리당의 문대성이나 김형태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나은점이 없는 저런 종자들한테 누가 스스럼 없이 흥에 겨워서 표를 던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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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기사


경기동부연합의 몸통을 만나다


등록 : 2012.03.31 10:01수정 : 2012.03.31 13:02

정형주 전 민주노동당 경기도지부 위원장

정형주 “조중동의 색깔공세…경기동부 실체 없다”

이정희·이상규도 경기동부? “경기동부 출신 아냐”

“진짜 집에 김일성 사진 걸어놓고 절하나요?”

“하하하하”

 질문을 던지자 정형주 전 민주노동당 경기도지부 위원장은 한참을 웃었다. 기자도 웃었다. 그러나 실제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질문 받으면) 그냥 웃고 말죠. 김일성 사진이야 당연히 봤지만 단 한번도 제 지인들 집에서 본 적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우리를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싶은 거겠지요. 진보진영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싫으니까.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다보면, 없는 것도 있는 게 돼요. 수십년간 국민들은 그런 말들에 갇혀왔지요.”

 “경기동부가 관악을 사건에 어떤 개입도 안했나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말들은 통합진보당 지도부를 허수아비로 만들려는 정치공작입니다.”

 정형주 전 위원장(48). 그는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경기동부연합(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의 ‘몸통’이었다. ‘경기동부’라는 게 실재하는 개념이라면 그는 그 세력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한국외대 84학번으로 입학한 뒤 1988년 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부의장을 지낸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1989년부터 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지역 민중운동을 시작해 경기동부 지역의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1995년 성남청년회 회장, 1996~1998년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성남연합 집행위원 , 1999년 경기동부지역 민족민주청년단체연합 공동의장을 지낸 뒤 2005년 민주노동당 경기도지부 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김미희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야권단일 후보(통합진보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이다.

 경기동부연합을 이끌던 정 전 위원장은 1996년부터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했다. 이 때 그는 31살의 나이로 성남시 중원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8.4%의 지지를 얻었다. 당시 재야 운동세력이 이 정도의 지지를 얻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운동권 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정 전 위원장이 80년대 후반 이 지역으로 옮겨와 바닥부터 민중운동을 벌인 성과인데 그는 16~18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계속 도전해 20% 안팎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런 성과 덕분에 경기동부연합은 민주노동당에 들어와 활동하는 NL그룹 내에서 핵심으로 떠올랐다.

 정 전 위원장은 “없는 것을 갖고 (언론들이) 자꾸 공격하니까 본질을 말하고 싶었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를 만난 건 28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김미희 후보 선거사무실에서였다. 사무실은 지역 주민들의 방문으로 꽤 북적였다.

정형주 전 위원장이 28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김미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사무실에서 당직자들과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허재현기자 catalunia@hani.co.kr  
 

#경기동부 논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보좌관의 경선 여론조사 개입사건 이후 경기동부 논란이 거세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나 불리던 통합진보당 내 특정 정파 이름이 포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 내리고 보수신문들은 연일 이들의 실체라며 확인안된 사실들을 폭로하느라 바쁘다. 보수신문들만 보고 있자면, 경기동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또 다른 지하조직처럼 보일 지경이다. 급기야 한 보수신문은 “경기동부연합이 이정희 대표를 대학 1학년 때부터 낙점했고, 남편 심재환 등이 집중적으로 가르쳐 기획했다”고 색깔론을 폈다.

 그러나 이정희 대표는 1987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경기동부연합은 재야운동단체들이 모여 1991년 12월 결성한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의 지역 조직이다. 1991년 결성된 조직이 1987년 입학한 대학 새내기를 낙점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 대표는 지난 26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경기동부 관련 질문에 “무슨 파 무슨 파 이런 얘기들은 들어봤지만 특정 정파가 당의 공식적 논의 체계를 벗어나 결정한 적 없고, 다른 차원의 결정이라며 제게 전달된 것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보다 앞서 이 대표는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경기동부의 실체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동부, 실체는 있나 

경기동부연합은 지금도 존재하는 단체일까. 정형주 전 위원장은 “경기동부연합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한 뒤 얼마 안 가 없어진 단체”라며 “조중동이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이다. 경기동부연합은 전국연합의 하부 지역 조직이었다가 2000년대 중반 즈음 해체했다. 전국연합의 주요 하부 조직으로는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 울산연합, 광주·전남연합, 서울연합 등이 있었고 자주민주통일 운동그룹(일명 NL)이 주로 활동했다. 그 중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은 민주노동당 설립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경기동부연합 활동가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주로 민주노동당 안에서 활동하며 더 이상 경기동부연합을 주요활동 공간으로 삼지 않는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서 경기동부연합은 자연스레 소멸되었다. 경기동부연합의 상부 조직인 전국연합은 2006년 진보연대가 출범하면서 사실상 이름만 남아 있다가 2008년 2월 공식 해산했다.

 정 전 위원장은 “지역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90년대 중반부터 우리도 정치세력화를 위해 정계에 진출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연합 모든 활동가들이 처음부터 이런 목소리를 낸 건 아니었고 경기동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성남시와 수원시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기동부 지역 활동가들은 1997년 권영길 후보가 대선 후보로 출마한 국민승리21 선거운동캠프에도 적극 참여하고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하자마자 당원으로 가입한다. 이 때문에 경기동부 활동가들은 민주노동당 내에서 빠르게 주류로 자리 잡아갔다.

 그러나 정 전 위원장은 창당 초기 주류였던 평등파(노회찬 심상정 등을 중심으로 하던 PD계열) 를 밀어내고 경기동부가 당을 장악했다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진성당원제(당비를 납부하는 평당원들이 대의원을 투표로 직접 뽑고 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통제하는 당 운영체계를 뜻함. -편집자 주)로 운영되고,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 당원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경기동부가 당을 장악한다는 건 구조적으로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또 경기동부연합이라는 단체도 없어졌고 지금은 경기동부 차원의 어떤 형태의 다른 의사결정 구조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경기동부연합 안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한 파벌로서 민주노동당 내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경기동부 정파는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경기동부 정파로 불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경기동부’라고 부르지 않지만 진보진영 안에서 경기동부는 민주노동당의 패권을 쥐고 있는 진영(당권파)을 지칭하는 용어로 엄연히 사용되어 왔다.

 서울의 한 통합진보당 지역위원회 위원장은 “‘경기동부’는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정파라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한 가지 예를 들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결정한 것은 2011년 11월25일이다. 그러나 당 내에서는 7월부터 정파들끼리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 때 경기동부로 분류되는 활동가들은 참여당과의 통합을 적극 주장했다. 공식적인 당의 입장이 생기기 전에 어떤 움직임이 있다는 건 통합진보당 안에 정파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난 해 민주노동당 정파 갈등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 <파벌>을 출간한 정영태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식적인 전국 모임이 없어졌으니 실체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경기동부는 서울과 지방 등에 활동가들이 퍼져 있다. 2008년 분당 사태 전까지 경기동부 정파는 집단행동도 하고 대책회의도 했다. 평등파건 자주파건 구분하지 않고 정파 세팅 선거(특정 정파가 미리 선거전략을 세운 뒤 당원들에게 지침을 내리는 선거-편집자주)는 존재했다”고 말했다.

#경기동부가 비판 받는 이유 

정파의 존재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어떤 정당이건 정파는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경기동부 정파가 비판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노동당 내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보수진영의 ‘종북좌파 공격 논리’와는 또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김아무개(30대)씨는 2002년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 한 때 서울의 한 지구당에서 상근활동도 했다. 그러나 김씨는 2008년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 경기동부 정파의 패권주의와 비민주적 모습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경기동부로 분류되는 당원들은 지역구위원회를 장악하려고 곳곳에서 비민주적 방식을 동원했어요.”

 그는 2004년 경기동부 정파가 장악한 수원시의 한 지역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했다.

 “지역위원회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당원들이 투표를 하는데 부정선거가 벌어졌어요. 투표는 정해진 장소의 투표소에서만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투표함을 들고 다니면서 호의적인 노조의 노조원들을 찾아가 투표를 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김씨는 “지역구 장악을 위한 부정투표, 당비대납, 위장전입과 같은 일은 상당수 지역위원회에서 수시로 벌어진 일이었다”고 전했다. 그 중심에 경기동부 정파와 같은 NL계열의 당원들이 있었다.

 2001~2005년까지 서울 용산구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ㅎ씨는 2001년~2002년 사이 NL계열의 인천연합 활동가들과 겪었던 일을 소개했다. 진보진영 안에서 유명했던 ‘서울 용산지구당 장악 사건’이다.

 “2001년 용산구 지역위원회로 한 청년이 자기가 사무국장을 하겠다며 찾아왔습니다. 한총련 집행위원을 했다더군요. 그러면서 지역위원회 부위원장인 제게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에 관한 얘기를 꺼냈어요. 저는 ‘당신들이 당밖에서 뭘 결의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것을 왜 나한테 말하냐’고 했어요.”

 (이는 전국연합이 2001년 9월 대회를 열어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족정부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고 결의한 문건을 말한다. ‘군자산의 약속’·‘9월 테제’라고도 불린다. 이 결의 후 전국연합에서 활동한 NL계열 활동가 대부분이 민주노동당에 집단 가입한다.-편집자주)

 이후 ㅎ씨는 황당한 일을 계속 겪게 된다. 용산구 지역위원회에 가입하는 당원들이 급속히 느는데 알고 보니 인천연합 활동가들이었다. 인천에서 용산구로 집단 이주해 온 이들은 얼마 안가 용산구 지역위원회를 장악한다. 이 과정에서 인천연합 활동가들은 당비를 대납하고, 엉터리 주소를 기입하는 편법을 저지르며 당원 수를 늘렸다.

 결국, 기존의 당원들이 중앙당에 문제를 제기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지부 선거관리위원회는 자체 진상조사 후 당비 대납사실을 확인한 뒤 당기위원회에 제소를 주문했다.

 ㅎ 씨는 “민주노동당은 상명하달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먼저 지역위원회를 장악해야 중앙당지도부를 장악할 수 있다”며 “(인천연합 활동가들이) 이런 이유로 지역위원회 장악을 시도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천연합 활동가들은 용산구 지역위원회를 장악하자마자 다른 지역위원회로 옮겨가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ㅎ씨는 최근 관악을에서 벌어졌던 일을 보고 “여전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정희(사진 위)통합진보당대표, 이상규 관악을 야권단일후보
#이정희 대표와 이상규 후보도 경기동부? 

세간에선 이정희 대표와 이상규 관악을 야권 단일후보(통합진보당)도 경기동부 출신 아닌지 의심을 보낸다. 그러나 당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둘은 경기동부 정파와 가까운 인물일 수는 있어도 같은 정파로 분류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정희 대표는 서울대에 1987년 입학했고 한 때 서울대 총여학생회를 이끌었다. 총여학생회는 자주파 운동세력들이 주력하던 학생회 기구는 아니었다. 이 대표는 변호사가 된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여성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 대표를 지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강금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자주파(NL)와 평등파(PD)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는 통합진보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정희 대표는 2008년 민주노동당 입당하기 전까지 변호사 활동에만 치중했고 2006년 강금실 후보를 공개 지지해 한 때 친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하며 “‘경기동부가 이정희를 새내기 때부터 찍어놓고 키웠다’는 주장은 질 떨어지는 황당한 무협소설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정희 대표를 ‘경기동부의 꼭두각시’로 보는 것도 부정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대표가 관악을 후보를 포기하는 과정을 예로 들었다. 경기동부 쪽은 후보 사퇴를 만류했지만 이 대표가 사퇴선언 불과 몇 분 전 측근들에게 사퇴결심을 통보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나간 것을 보면 이 대표가 무조건 정파에 휩쓸려 다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 최 측근은 29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 대표의 민주노동당 입당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민주노동당이 분당사태를 겪은 뒤 2008년 총선 직전 외부 인재 영입을 고민하던 ‘천영세 비대위’가 회의를 통해 이정희 대표의 입당을 추진했다. 당시 이정희 대표는 변호사 생활을 쉬고 공부를 하려던 차였는데 민주노동당이 큰 위기를 겪는 모습을 보고 입당제안을 받아들였다.”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경기동부 정파가 아니다. 천 대표는 국민파에 속하는데 국민파는 종북 성향과는 거리를 두는 민족주의 정파(비주사 NL)로 분류된다. (민주노총 3대 계파로는 국민파·중앙파·현장파가 있다.-편집자 주)

이상규 후보도 경기동부연합 출신은 아니다. 이 후보는 서울 구로구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그는 1991년 구로 청년회에 가입해 노동자 역사교실 등을 운영했다. 서울연합에 적을 두긴 했지만 직책을 맡지는 않았다. 2002년 민주노동당에 가입해 현재까지 당의 주요 직책을 맡아왔다.

 이상규 후보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진중권 교수가 나를 경기동부의 몸통이라고 지적했는데 뭘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관악을 후보를 수락한 배경에 대해 “이정희 대표가 23일 오후 2시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후보를 맡아달라고 해서 수락한 것이다”고 해명했다. 경기동부의 전략적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후보는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야권단일화에 합의한 뒤 한명숙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그러나 일부에선 이 후보가 관여했던 서울연합 정파는 당 내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 못해 대체로 경기동부 정파에 수렴된다는 관측도 있다.

#경기동부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 

경기동부 정파에 대한 반응은 진보진영 안에서도 엇갈린다. ‘주사파들은 구제불능’ 이란 시각에서부터 ‘극단적 비난은 삼가야 한다’는 시각까지 다양하다.

 ㅎ씨(전 용산구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부위원장)는 “이들은 한국 사회가 만든 괴물이다. 분단 정국이 바뀌지 않는 한 절대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며 “이들은 진보진영의 미래를 위해 사라지는 게 옳다”는 견해를 밝혔다.

 경기동부연합 등 NL 활동가들의 이런 모습을 두고 무조건 이들을 폄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경기동부연합과 관련한 분석 글을 써 화제를 모았던 <딴지일보> 정치부장 박성호(필명 물뚝심송)씨는 “경기동부연합을 비롯한 소위 NL 활동가들을 무슨 사회악처럼 보는 것은 곤란하다. 이들이 당 내에서 다소 문제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엄연히 우리 사회 진보의 성장터를 닦은 중요한 사람들이다. 이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통합진보당 지역위원회 위원장은 “이들은 없어질 수도 없고, 없어지라고 주장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진보진영 내에서 제대로 된 좌파가 이들의 영향력을 극복해 대안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영태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내 문제를 외부에서 너무 과하게 문제 삼으면 안된다”면서도 “외부에서 더 문제 삼기 전에 (경기동부 정파가) 스스로 비민주적 문화를 정화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 교수는 “브라질의 노동자당(룰라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처럼 정파등록제를 실시해 당 활동가들이 정책과 노선을 당원들에게 분명히 밝히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형주 전 민주노동당 경기도지부 위원장은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경기동부를 패권주의 단체처럼 몰고가는 것은 보수세력이 통합진보당을 국민들과 분리시키려는 공작”이라며 현재 보수세력이 제기하는 무차별적 색깔론에 대해선 “진보세력의 교섭단체 진출을 막으려는 악의적인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 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경기동부 논란에 대해) 통합진보당이 기존의 낡은 정치문화를 깨고 한국 사회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가는 큰 과정의 일부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글·사진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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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까 이미 김대중 정권때부터 한겨레를 진보언론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한걸레라는 명칭이 그냥 나온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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